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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진혼곡ver. [2]

귬델리 2021. 8. 6. 22:31


https://zxc06365.tistory.com/m/90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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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무구의 몸에 가려졌던 시야가 보이자 필안은 할 말을 잃었다. 불빛 한줌 들어오지 않았을 지하실 구석엔 웬 한 마른 여자가 발에 족쇄가 달린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사필안이 할 말을 잃기 전 범무구는 더 빠르게 그전에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어두운 지하에 여자 하나를 가둬두었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미 이곳의 보스는 죽었다. 물어볼 길이 없다는 얘기. 죽은 자는 대답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제 발아래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여자에게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이때 먼저 정신을 차린 필안이 무구의 어깨를 잡았다.


"무구 형님."

"··아..,"


아우가 제 이름을 부르며 말하자 무구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럼에도 잠시동안 둘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어렴풋 기억났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어린 과거가.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며 길거리를 방황하던 시절. 뼈에 가죽만 붙었다는 것을 실현 시키는 모습의 무구와 필안. 전 보스가 일이 있어 그 둘을 지나쳤기에 후에 운 좋게 이리 살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문득 족쇄에 묶인 여자를 보니 자신들의 과거가 스쳤다.


철컥-


사필안이 총을 장전하여 총구를 여자의 머리 앞을 향하게 두었다. 방아쇠만 잡아당기면, 총알은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자의 작은 머리통을 뚫고 지나가겠지. 즉사. 바로 그 즉시 즉사할 것이다. 머리, 최대한의 고통 없이 빠르게 죽을 수 있는 위치였다. 이 여자에게 악감정은 없다만. 보는 눈이 많으면 후에 귀찮아 지는 법이다. 한시라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필안은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손에 힘을 주려던 때었다.


"잠깐."


무구가 손을 뻗어 제지했다. 무구가 제지하자 필안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며 총을 내렸다. 한참을 말없이 서있던 무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데려가도록 하지."

"형님? 무슨..,"


무구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단순한 동정이었을 뿐이다. 왜인지 모르게 눈앞에 있는 여자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떠올 리게 만들었다. 뭔지 모를 동질감이었을 뿐이다. 필안은 무구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무구가 한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바뀌는 법이 없으니까. 그만큼 무구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변하지 않는 그의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데려가더라도 보스에겐 보고해야 합니다."

"그래."


무구가 말하자 필안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전 중요한 자료들을 추릴 테니 형님은 이 여자의 족쇄를 풀만한 것을 찾아봐 주세요."

"아아, 부탁한다."


필안이 그렇게 두껍게 쌓인 문서와 자료를 찾을 동안 무구는 떨떨 떨고 있는 여자 앞에 쭈그려 앉았다. 무구가 자신 앞에 쭈그려 앉으니 여자는 더 이상 도망갈 구석도 없으면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덜덜 떨고 있는 여자의 발목을 보니 꽤 족쇄가 두꺼웠다. 얼마나 발버둥 친 건지 발목 주변은 새뻘갛게 변한 채 피부가 갈라져 있었다.
무구는 물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거지?"

"...으..,"


여자는 상당히 겁을 먹은 건지 무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말을 할 줄 모르는 건가?


"이봐, 말을 할줄 모르나?"


슬슬 약간의 짜증이 생겨났다. 단순한 동정심일 뿐이기에 말도 못하는 대화 상대는 귀찮을 뿐이다. 이 여자는 말을 할줄 모르는게 확실했다. 말을 할 줄 안다면 대답이라도 했을 테니까. 게다가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 얼굴을 모르니 어딘가 답답함이 느껴졌다. 무구는 손을뻗어 여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여자는 크게 움찔거렸다. 무구의 손에 피가묻어 여자의 머리카락에도 피가 스며들었지만 무구는 개의치 않았다. 머리카락을 목뒤로 쓸어넘기자 가려져있던 얼굴이 들어났다.

미모는 꽤나 볼만했다. 아니, 생각보다도 어여뻤다. 이미 죽어버린 이곳의 보스가 왜 이 여자를 이곳에 가둬두었는지 무구는 빠르게 파악했다. 뻔했다. 분명 발정 난 것마냥 이 여자로 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두었던 장난감 이었겠지.

무구는 인상을 찌푸렸다. 의도가 더럽다 못해 역겨웠다. 이런 놈들은 하나같이 제 욕구를 풀기 위해 힘없는 여자를 장난감 마냥 가지고 논다. 그게 상거지던, 돈 많은 놈이건. 지하실까지 만들어 이곳에 가둬둔 이곳의 보스놈은 더한 새끼였을거다. 잘 뒤졌다 생각했다. 무구는 대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여자의 발목을 두껍게 감싼 족쇄부터 없애야 진전이 있지 않겠는가.

열쇠를 숨겨둔 장소야 뻔했다. 이 지하실 그것도 아니면 뒤져버린 보스의 옷. 지하실까지 만들어 중요한 서류와 같이 가두어 두었다면 꽤나 중요 하단 건데.. 무구는 지하실을 나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보스의 멱살을 잡고 옷 안을 뒤졌다. 슈트 안주머니에서 생각하던 것과 같이 열쇠가 나왔고, 무구는 이 재수 없는 면상을가진 보스의 얼굴을 한번 짓밟은 뒤 지하실로 다시 내려왔다.

얼핏 보니 필안은 챙길 서류를 거진 다 모은 모양이었다.
무구는 여자 앞으로 다가가 덜덜 떨고있는 여자의 발목을 잡았다. 움찔거림으로써 족쇄가 차르륵거렸다. 무구는 발목을 좀더 강하게 쥐었다. 말라서 그런지 여자의 발목은 얇았다. 비틀면 금방이라도 부러질듯이. 무구의 손에 잡히고도 세손가락은 더 들어갈듯했다. 무구가 입을열었다.


"가만히 있어."


어차피 무구가 여자의 발목을 강하게 쥔 이상 떨릴 수가 없었다. 무구는 작은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철컥.
발목을 감쌌던 족쇄가 갈라지며 풀렸다. 족쇄를 들어보니 무계가 상당히 나갔다. 잘도 이런 족쇄를 달고 지냈구나.
무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아,!"


무구가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기자 여자는 힘없이 딸려오는가 싶더니 몇 발작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무섭고 긴장한 탓에 다리가 풀린 것도 있지만 족쇄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쭈그려서 벌벌 떨고만 있었으니 걷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읏.."


여자는 넘어진 탓에 짧은 신음 소리를 냈다. 무구는 여자를 내려다 보았다. 계속 손목을 잡고있는 상태였다. 무구는 상냥한 편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지금 이런일을 하고 있지도 않겠지. 게다가 상냥히 대하는 방법따윈 몰랐다. 여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더욱더. 상냥하기라도 해야 그것을 행동에 옮길 텐데 그가 살아온 환경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힘으로 여자의 손을 잡아 끌어올렸고, 결과는 보다시피
제 아래에서 넘어진 모습이었다. 이때 서류를 추린 필안이 다가왔다. 필안은 멀리서부터 이 상황을 지켜보았었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 무구 때문에 무슨 생각인가도 싶었다.


"아무래도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군요."

"귀찮게 되었군."


무구는 한숨을 쉬는가 싶더니 여자를 제 품에 안아올렸다. 동정과 귀찮음은 별개였다. 여자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 했지만 무구의 얼굴은 무엇 하나의 동요도 없었다. 무구가 말했다.


"아무래도 따로 간다고 사냥개한테 연락해야 할듯하군."

"제가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처음부터 사냥개, 역날. 필안과 무구는 차를 따로 타고 왔다. 원래 같았음 아래에서 모인 뒤, 동시에 출발했겠지만. 지금 이 여자를 안고 나가면 사냥와 역날이 의심을 가지겠지. 어차피 보스에게 보고하면 될 일이고. 보스가 알면 필안과 저를 뺀 나머지 보스의 실세들은 후에 알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귀찮아지는 것은 피하는 것은 좋지. 필안은 무전기를 통해 역날에게 먼저 출발해도 좋다는 말을 했고 역날은 기뻐하며 알겠다고 말한 뒤 무전이 끊켰다.


"저희도 이만 내려가죠."

"그래."


제 품에 안은 여자는 생각보다도 상당히 가벼웠다. 키는 160을 조금 넘기는 것 같았으나 몸무게는 40키로를 넘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한편, 무구의 품에 안긴 여자는 공포 그 자체였다. 여자의 삶을 돌아보자면 이랬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끊어져 생각이 나지 않고, 눈 떠보니 인적 드문 곳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자들. 그리고 그 주변에 남자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곳에서 청소를 했었다. 다시 한번 눈을 뜨자 가면을 쓴 의자에 앉은 사람들과 무대위 내리는 조명아래 철창에 갖힌 저를보며 사람들이 큰소리를 냈었고, 다시한번 눈을뜨자 이곳에서 제일 강한 남자가 자신을 보며 흥분한체 서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낸지 몇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눈떠보니 술집이었고, 눈떠보니 경매장이었다. 술집에서 뒤처리를 하는 것도 그저 덩치큰 사람이 큰소리를 내며 위협하길래, 안 하면 피나도록 맞으니까. 그래서 했을 뿐이고. 주인장이 팔아넘겨 자신이 경매장에 있을 때도 자신이 팔린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이 많고 시끄러웠다는 거 밖엔 몰랐다. 그리고 이곳의 보스가 저를 사들였을 때도 인형처럼 아무 생각도 없었으며 심기를 거스르는 날에는 미치도록 맞아 몸 하나 가누지 못했다. 이 여자는 이름도 없고. 말을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으며 그저 말없이, 자신의 의지조차 없이 살아왔고 오랜 구타에 공포감에 절여진 상태였다. 어렸을 때부터 윽박만을 받고 자라 소통조차 해본 적이 없었고,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눈치만을 보며 살아온 여자였다.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둠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가끔씩 저를 사들인 자가 홀로 들어와 흥분한 얼굴을 하곤 한참을 제 몸을 더듬으며 '조금만더. 조금만.., 더 참으면!!'라며 말하다 나갈 뿐.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남자는 무언가를 위해 기다리는듯했다. 그 시간에도 아프게 맞지는 않을까. 어딘가 거부감이 깊게 들었지만 여자는 덜덜 떨기만 했다. 남자를 밀어내면 몸이 아프다.. 그리 생각할 뿐. 그렇게 지낸지도 얼마나 흐른지는 모르겠다만 평소와 다르게 굳게 닫힌 문밖에선 큰 소리가 들렸고 어느덧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곤 불이 켜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그 남자가 들어온 건가 싶어 몸을 움추렸다. 밖이 소란 스러 웠었다. 잘못하다간 또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남자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들어오면 몸엔 파란색 멍이 그득했으니까. 어두운 공간엔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켜졌고,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눈동자만 굴려 위를 바라보자 처음 보는 남자가 서있었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공포였다. 처음보는 남자, 온 몸엔 빨간 피가 가득했다.

남자는 제 발에 무겁게 달린 족쇄를 풀어주었고 잡아당겨 넘어뜨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신을 안았다. 그 동시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지 모를 상황에 떨기만 할 뿐 두 손을 꼭 쥔 채 시선을 땅만 보았다. 무구가 여자를 안고 지하실을 나오자 바닥을 붉게 물들인 비릿한 피 냄새와 이미 차갑게 식은 고깃덩어리가 눈에 훤히 보였다. 그 한가운데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남자. 보스였다.


"흡..,"


피비린내가 역겨웠다. 구토감이 쏠리기도 했다. 입을 틀어막으며 제 품에서 크게 움찔거리는 여자를 바라보자 여자는 심각하게 겁을 먹은 듯 동요했다. 평생 동안 시체를 볼 일이 없는 사람에겐 당연했다. 무구는 그 모습을 보며 귀찮더라도 빠르게 걸었다. 내려오는 곳곳에 못 보던 시체가 보였다. 숨어있던 피라미들을 역날과 사냥개가 마저 깔끔히 처리한 것이었다. 어느덧 아래로 내려와 차를 세워둔 곳에 다다랐다. 대기하던 부하가 무구의 품에 안겨있는 여자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하며 뒷좌석에 문을 정중히 열었고, 무구는 여자를 내리곤 차에 태웠다. 필안과 무구를 사이로 여자가 앉았다. 운전 좌석에 앉은 부하는 차에 시동을 걸고는 이내 조직으로 출발했다. 필안이 제 옆에 앉은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떨며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무구. 이 여자를 데려가는 이유가 있습니까?"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을 하는가 싶던 무구는 필안에 말에 눈을 뜨고 대답했다.


"딱히..,"

"보스에게 보고할 때 데려온 이유가 필요할 겁니다."

"···보스에겐 내가 가서 말하지."

"..알겠습니다 형님."



필안은 더이상 묻진 않았지만 언뜻 알것 같기도 했다. 무구의 얼굴에 들어난 표정은 과거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다시 정적이 이어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직앞에 도착했다.
무구는 필안에게서 자료들을 건네 받았고 그 이외에 알아낸것을 전달했다. 조직 크기에 답지 않게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보스에게 말해 조금더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간략하고 빠르게 전달했고 무구는 그것을 바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전 혹시 모르니 이 여자를 해독제에게 데리고 가겠습니다. 후에 방에서 보죠."

"그래. 부탁하마 필안."


그렇게 둘은 서로 갈라졌다. 필안은 지금은 걷질 못하는 여자를 안고 해독제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조직명 해독제, 본명 에밀리 다이어. 그녀는 독을 이용한 실험을 하는 여자이며, 그 동시에 조직의 의사이기도 했다. 필안이 정체 모를 여자를 안고 들어오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혼곡? 그 여자는 도대체.."

"후에 보스에게 듣게 될겁니다. 그러니 우선 이 여자 건강 상태 좀 봐줬으면 합니다 해독제."


해독제는 필안의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보스가 알게 될 거라 하니 상관없었다.

🌙

한참뒤에 무구는 보스에게 보고를 끝내고 방문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 앞엔 진찰을 끝낸 여자를 안아든 필안이 서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걸어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필안이 무구인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보스가 뭐라 말하던가요."

"..."


「"거기에 갇혀있던 여자 하나를 데리고 왔다고?"

"뭐.., 상관없어 데려오든지 말든지. 네 생각이 있으니 데려왔겠지."

"다만. 일에 지장이 생기면 내가 직접 나설거야."」


"일에만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더군."


의외로 보스는 여자를 데려온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일에 지장이 생기면 직접 나선다는 건, 직접 처리하겠다는 거겠지.
자료에 대한 조사는 부하에게 알아보라고 시키겠다며 보고를 끝내고 나왔다. 라는 무구의 대답을 들은 필안은 그렇군요 라며 웃어 보였다. 무구는 손이 모자란 필안 대신 방 문을 열었고 그렇게 셋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를 소파위에 내려준 필안은 말했다.


"온몸에 멍 자국이 가득하더군요."

"멍자국?"

"아무래도 그곳에서 지내던 보스에게 당한것 같더군요. 멍이 부분부분 크게 나있어요."


보나마나 뻔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개패듯 폭력을 가했을 것이다. 몸이 가는 여자를 때릴 구석이 어디있다고 때리는건지. 징하단 마음에 혀를 내둘렀다. 생각보다도 미친놈이었군.


"해독제에게 멍 부위에 바를 약를 받아오긴 했는데..,"

"···아..,"


필안이 말 끝을 흐리자 무구는 알아챘다. 옷을 벗어야 한단 거군. 그것도 그거지만 제 몸에 피가 묻은 상태에서 그대로 안고 왔으니 여자의 옷과 몸에도 피가 묻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씼어야 한단 말인데.., 힘이 빠진 몸으로 이 여자 혼자 씻기는 무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부하들에게 맡기기기엔.., 조직원 부하들은 전부 남자밖에 없었다. 보스의 실세엔 여자들도 있다만 그녀들은 제 할일도 빠듯했다.


"..곤란하네요."


필안이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무구는 복잡해진 머릿속에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잘 풀리는 일이 없군. 무구는 깊게 한숨을 들이마시며 내쉰 뒤 입을 열었다.


"내가하지."

"그러세요."


필안은 즉각 대답했다. 무구는 필안의 빠른 대답에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필안은 선량하게 웃어보였고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내보이던 무구는 무거운 하네스를 벗어 던졌다.


"그럼 저도 이만 제 방에 들어가 볼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와주세요."

"그래.."


조직안, 필안과 무구의 방. 무구와 필안의 저택은 이곳이 아니라 따로 있지만, 몸을 움직이기엔 조직이 빠르고 편했다. 어쨌든, 그 안엔 무구와 필안의 방이 따로 나누어져 있었다. 필안은 방으로 들어갔고 무구는 소파 위에 앉아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우선 씻겨야 약이라도 바를 수 있다. 무구는 방 안에있는 욕실로 들어가 욕조안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소리와 함께 욕조안엔 물이 서서히 차올랐다. 무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일단 옷을 입히고 씼겨야 하는건가. 아무리 어리게 본다 한들 18살 정도였다. 정확히 나이도 모르는데, 몸이 다 큰 여성의 알몸을 보는건 무구의 입장에선 심히 난처했다. 노출이 심한 옷과는 다르게 알몸이니까. 노출이 심한옷도 중요부위는 다 가리지 않는가. 무구는 마른 세수를 했다. 어느덧 욕조엔 물이 차올라 흘러넘쳤고, 김이 서려 유리가 뿌옇게 변했다.


"일단 데려온 후에 생각하자."


무구는 거실에 숨죽여 앉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손목을 잡곤 전과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다리 풀린 건 슬슬 괜찮아졌을 거다. 한번 일어나 봐."


여자는 제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욕실로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넘어질 뻔했지만, 무구가 팔을 단단히 잡아주었기에 전처럼 넘어지진 않았다. 욕실에 도착해 가만히 서있자 답답해진 무구는 여자를 안아올려 욕조 안에 담갔다. 여자가 작게 움찔했지만 무구는 개의치 않았다. 욕조 안 가득 차있던 물이 여자가 들어오자 흘러넘쳤다. 무구의 생각은 이랬다. 일단 머리부터 감기고 난 후에 몸은 알아서 씻으라 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제 몸 하나는 씻을 수 있겠지. 무구는 앉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물에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욕조 밖으로 꺼냈다. 무구의 손길에 여자가 놀라 몸을 움츠리자 무구는 미간을 모으며 여자의 얼굴을 잡았다.


"가만히 있어. 눈 안에 거품 들어가기 싫으면."


고개를 조심스럽게 뒤로 젖혀주었다. 항상 힘만 쓰다가 조심스럽게 대하려니 손가락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구는 짧게 한숨을 쉰 뒤 손에 샴퓨를 짜내어 거품을 내었다. 보글보글 향기좋은 거품이 올라오자 머리카락에 손을 가져다 대곤 머리를 감겨 주었다. 꽤나 긴 머리카락과 끝이 갈라져 엉켜 있는 부분을 빗질로 한참을 푸느라 애를 좀 썼지만, 거품까지 물로 거두어 낸 후 보니 머릿결은 생각보다도 부드러웠다. 머리를 감겨 주는 것이 끝나자 무구는 샤워볼을 꺼내어 그 위에 바디워시를 짜내곤 거품을 낸 뒤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머리를 감겨주는 동안에 얌전히 있었다. 아니, 몸이 뻗뻗하게 굳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게 맞는 말이겠지. 여자는 무구가 샤워볼을 내밀자 겁먹은 채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샤워볼을 바라보았다. 무구는 여자의 손목을 잡아 손에 쥐여주고는 말했다.


"내가 나가면 옷을 벗고, 이걸로 몸을 닦아."


여자는 벗어. 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종종 이곳으로 오기전
죽은 남자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벗으라는 말 하나에 여자는 피가 묻어 더러워진 원피스를 바로 벗으려 했다. 돌발스러운 행동에 무구가 적잖게 당황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제지했다.


"아, 아니! 내가 나가면 벗으라고!"


무구가 소리치자 여자는 동공이 확장되며 다시 한번 심하게 몸을 떨었다. 화를 내는 남자는 무서웠다. 몸집이 큰 남자가 분노에 사로잡혀 위협하면 당장이라도 죽을듯이 몸이 덜덜 떨렸다. 소리치는 것도 이것에 포함이었다. 큰소리를 내면, 후에 분명히 몸이 아파지니까. 여자의 얼굴을 보고 무구가 심각하게 미간을 모았다. 상당히 귀찮은 여자를 데려왔다. 조금밖에 상대를 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큰소리를 내거나 말을 걸어도 모터가 달린 것 마냥 몸을 덜덜 떠는 여자는 몹시 귀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구는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본인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실증이 나버리는 약간의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후.. 그만 좀 떨어. 지치지도 않는 거냐 넌?"


지쳤다는 듯 물었지만 말도 못 알아듣는 여자가 알아들을 리는 턱없이 만무했다. 괜히 불안해 보이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본인까지 불안해지는 심리가 느껴졌다. 그만 좀 떨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진정을 시킬까 하다가 생각났다. 어렸을때 필안이 울면 제 품에 안아 등을 토닥여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필안은 얼마 안 가 울음을 그쳤었지. 그 생각이 남과 동시에 무구는 여자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그녀를 제 품에 안아 등을 토닥였다.

오랜만에 하는 행동이라 몸이 굳은 채 어색하게 등을 토닥였지만 이걸로 제발 몸좀 그만 떨어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남자의 품에 안기자 여자는 놀란 눈치였다. 코 끝으로 피비린내가 나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닿은 몸속에서 심장 소리가 들려와 어딘가 안정이 됐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기도 했고, 일정한 간격으로 뛰는 심장소리에 안심이 되어 몸에 떨림이 서서히 멎어들었다. 여자의 몸이 떨리지 않자 무구는 괜찮아진 건가 싶어 몸을 떼어냈다. 다는 아니더라도 전보다 풀어진 여자의 얼굴에 다시 샤워볼을 집어주고는 일어났다.


"그걸로 내가 나가면 몸을 씻고, 이걸 틀어서 거품을 없앤 뒤 나와."


수도꼭지를 가리키며 말하자 여자는 알아들은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을 감길 때 쓰는 걸 봤으니 사용 방법은 알겠지.


"그리고..,"


서랍장에서 몸을 가릴만한 정도의 큰 타월을 꺼내든 무구는 말했다.


"다 씻으면 이걸로 몸을 감싸고 나오도록"


선반에 타월을 둔 무구는 저를 바라보는 여자를 뒤로하고 문을 열어둔 채로 욕실을 나섰다. 애 하나를 돌보는 것 같은 마음에 다른 조직 하나를 털러 가는 것보다 훨씬 지치는 거 같았다.


"···차라리 조직을 터는게 쉽겠군."


벌써부터 지쳐 마른 세수를 했다. 그나저나 입힐 옷이 필요했다. 여자가 원래 입고 있던, 종아리까지 덮고 있던 흰 원피스는 피로 물들어버렸으니. 그걸 그대로 입힐 수는 없었다.
무구는 옷장을 나름대로 한참을 뒤지며 찾아보았지만 여자에게 입힐만한 옷은 없었다. 하긴, 갑작스레 데리고 온 것이니 당연했다. 그나마 입힐 만한 건 셔츠뿐인데. 알몸보단 나으니.. 생각하며 옷을 꺼내 들려던 차였다.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큰 수건을 몸에 두른 채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서있는 여자가 보였다. 수건 두르라는 소리는 다행히 알아들었나 보군. 무구는 그녀에게 다가가 셔츠를 건네었다. 여자는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셔츠를 받았고, 무구가 입을 열었다.


"네가 그나마 입을 만한 옷은 이것 밖에 없다. 젖은 옷보단 나을 테니 입어."


옷을 건네준 무구는 본인도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이 일에 익숙하다지만 피를 계속해서 묻히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 무구는 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있으라고 말한 뒤 이동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맞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괜히 데려온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이미 후회하긴 늦었다. 이미 데려온 것을 어떡하겠나.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었던 무구는 눈을 감았다. 핏물과 함께 복잡함이 몸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것 같았다. 무구는 빠르게 샤워를 끝낸 뒤 바지를 입고 셔츠는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로 욕실을 나왔다. 한 손으로 수건을 가지고 머리에 있는 물기를 닦으며 보니 침대에 앉아 졸린지 눈을 껌뻑껌뻑 느릿하게 감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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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 절 용서하지 마오오......(._.)
약간의 수위가 있는거 같아 R-15 로 올림미당